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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cky Cristina Barcelona, 2008

2009. 4. 27. 02:36 from Underline

시네큐브에서 영화를 보는 건 오랜만이다. 영화를 본 것 자체가 오랜만이긴 하다. 이 건물은 계절과 상관없이 청량한 온도를 느낄 수 있어서 좋아한다. 인간 관계로 비유하면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게 만들어주는 것 같은 공간이다. (요즘은 스폰지하우스가 영 별로다. 뭔가 피곤하게 치대는 분위기랄까) 
그리고 우디 알렌의 신작이 반갑다. 반갑다가 제목에서 멈칫한다. <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 자극적이기라기보다 참 알 수 없는 제목이다. 함께 본 G는 보고 싶었던 영화였는데 원제를 읽고나서야 알았다며 당황한다. 뭐 이런 식의 제목짓기가 새삼스러운건 아니고 사실 원제도 그렇게 와닿지 않기는 매한가지다. 오히려 영화를 보고나서야 깔끔하게 와닿는 제목. 어쨌든 스페인을 이토록 끈적이지 않고 근사하게 담아낸 영화가 또 있었던가.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속 눈물겹게 우스꽝스런 단발머리를 벗고 나니 이토록 매력있던 배우였다. 하비에르 바르뎀의 재발견. 스칼렛 요한슨과의 눈빛 교환을 끝내고(역시 남자가 다가와주는 편이 좋다) 테이블로 다가와 담백하게 주말여행을 제안하는 이 남자. 그 솔직담백한 애티튜드는 스페인이라는 도시적 분위기와 함께 작업멘트를 근사한 초대로 받아들이게 만든다.
그리고 페넬로페 크루즈. 나이가 들어가며 더욱 카리스마를 발휘하는걸까. 섬세한 드레스를 질끈 올려묶고 다리를 벌려서서 바닥에 놓인 커다란 캔버스에 붓칠을 하는 모습을 보고 순식간에 반해버렸다. 여자가 기가 세서 무서워지는 게 아니라 그 섹슈얼한 이미지에 힘을 실어주는 느낌이다. 같은 여자가 봐도 반할 만큼 멋지다. 대충 무릎을 세우고 앉아 웨이브진 머리를 갸웃거리기만 해도 아름답다.

그 색감, 스페니쉬 기타연주, 대낮의 샴페인, 그들의 키스, 우디 알렌스러운 음악, 우디 알렌표 재치만점 대사들..
크레딧이 올라가며 오랜만에 울었다. 이 할아버지는 사랑의 모든 정의를 1시간 30분짜리 영화에 다 함축해버렸나보다. 지난 내 사랑이 오버랩되며 복잡한 심경이 되버렸다. 미완성된 사랑이 로맨스라고, 서로를 너무나 사랑하지만 알지 못하는 한가지가 맞지 않아 계속 삐그덕댄다고. 그런 골치아픈 얘기를 이렇게 경쾌하게 풀어내는 이 할아버지의 저력이 놀랍다. 경험이 많으면 여유가 생긴다는 걸 충분히 알게 된 나이지만 우디 알렌의 경험에 나는 턱없이 못미칠테니까. 그 여유에 기대어 울면서도 마음이 가볍다. 단호하게 '절대'란게 없는 내 사고방식으로 무엇하나 나쁠 게 없이 다 이해되는 그들이다.

영화가 끝나고나니 버니니가 너무 간절해진다.(그들이 어찌나 샴페인을 즐겨대는 통에)  DVD타이틀로 갖고 mp3파일로 마냥 귓 속에 담고싶다. 다음 주말엔 혼자 시네큐브를 다시 찾아서 천천히 한번더 봐야겠다.

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
감독 우디 앨런 (2009 / 스페인, 미국)
출연 스칼렛 요한슨, 페넬로페 크루즈, 하비에르 바르뎀, 레베카 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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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n’t close the book  (2) 2009.04.03
Posted by shesaidyeah :

Don’t close the book

2009. 4. 3. 00:42 from Underline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뭔지 아니?"
"흠... 글쎄요, 돈버는 일? 밥먹는 일?"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사람이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이란다.
각각의 얼굴만큼 다양한 각양각색의 마음을 순간에도 수만 가지의생각이 떠오르는데..
그 바람 같은 마음을 머물게 한다는 건... 정말 어려운 거란다."

                                                                                                      생텍쥐페리 <어린 왕자>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해주는 건 기적이란다. 

GQ였던 것 같다 아마도. 어느 에디터가 자신이 스무살에 읽지 못한 것이 최고의 한이라며 소개한 <상실의 시대>를 서둘러 읽었을 당시 난 21살이였다. 만 나이로 스물이니까 괜찮아. 억지 위안을 삼으며. 스무살에 읽은 상실의 시대라니 얼마나 근사할지, 언젠가 시간이 흘러 '그 책은 뭐랄까..스무살답죠. 안그래요?'라고 나른하게 말을 하는 상황도 그려봤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우습기도하고 귀엽기도 하다) 스무살은 그런 허세조차도 사랑스러운 나이니까. 어쨌든 스무살에 <상실의 시대>를 읽었고 (그 에디터는 읽지 못했고) 이 포스팅을 보고있는 어느 스무살은 읽겠지. 그렇게 순환하다보면 <상실의 시대>는 점점 더 스무살다워지는 것이다. 이거 정말 멋지지 않은가!

<어린 왕자>는 내 인생의 순환이다. 초등학교 때 읽은 기억 속엔 '여우.3시.(3시 반인가?)'정도. 스무살에 다시 읽으니 이런 내용이 있었던가싶을 정도로 생경한 구절이 보였다. 조금 더 나이를 먹고 혹시나해서 다시 읽어봤더니 이번에도 생경한 구절의 발견. 그래서 아예 영어,프랑스어 3개국어 지원과 삽화 전격 수록이라는 특별판을 곁에두고 생각이 날 때마다 읽고 있다. 한없이 어릴 땐 만만한 동화책이였는데 어른이 되서 읽으니 한권이 그 자체로 인생이다. 경험만큼 시야가 비례하여 조금 더 보이고 조금 더 보인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도 알고보니 나를 좋아했던 경우는 많다. 사실 그럴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느끼면 나도 좋아하지 않았으니까. 내가 아무리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나를 좋아하지 않는 걸 알았다면 마음이 싹 사라져버리니까. 연애를 하다 이별에 임박해서 내가 확인하고 싶은 건 오직 한가지. '그러니까 이제 날 좋아하지 않는거지?...아니 이런저런 것도 어쨌든 결국 그걸 감당할 수 있을 만큼 날 좋아하지 않아서자나... ok. 그럼 됐어.'
이별은 결국 간단하다. 두 사람의 문제를 뛰어넘을 만큼, 감당할 수 있을 만큼 사랑하지 않아서. (가문끼리 원수인 숙명을 짊어지고 가는 연인이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게 아니고서야)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내게 좋아한다고 말해줄 때의 기분을 또렷하게 기억할 수 있다. 형용할 수 없는 기쁨, 신비롭고 행복하다. 기적같은. 하지만,

「모든 사물을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 것.
모든 사물과 나 사이에 적당한 거리를 둘 것.」

<상실의 시대>를 좋다고 스무살에 읽어놓고 저런 주옥같은 조언을 잘도 잊는다. 생각해보면 대부분 최소한의 적당한 거리를 지키지 못해서 찾아온 이별들이였다. 한 사람은 상대를 과대평가하고 나머지 한 사람은 상대를 과소평가한다. 서로가 동등해지는 시점이 이별인 것이다. 보이는 것의 이면을 알게 되고 더 나아가서는 상대 스스로 추려내 원하는 부분만 보여주고 있다는 것도 인식할 수 있게 된다. 역시 너무 가까워 적당하지 못한 거리가 문제였던 것이다. 

「소리내어 울고 싶었다. 하지만 울 수 없었다.  눈물을 흘리기에는 너무나 나이를 먹었고 너무나도 많은 경험을 해왔다. 이 세계에는 눈물조차도 흘릴 수 없는 슬픔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무라카미 하루키 <상실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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