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뭔지 아니?"
"흠... 글쎄요, 돈버는 일? 밥먹는 일?"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사람이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이란다.
각각의 얼굴만큼 다양한 각양각색의 마음을 순간에도 수만 가지의생각이 떠오르는데..
그 바람 같은 마음을 머물게 한다는 건... 정말 어려운 거란다."
생텍쥐페리 <어린 왕자>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해주는 건 기적이란다.
GQ였던 것 같다 아마도. 어느 에디터가 자신이 스무살에 읽지 못한 것이 최고의 한이라며 소개한 <상실의 시대>를 서둘러 읽었을 당시 난 21살이였다. 만 나이로 스물이니까 괜찮아. 억지 위안을 삼으며. 스무살에 읽은 상실의 시대라니 얼마나 근사할지, 언젠가 시간이 흘러 '그 책은 뭐랄까..스무살답죠. 안그래요?'라고 나른하게 말을 하는 상황도 그려봤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우습기도하고 귀엽기도 하다) 스무살은 그런 허세조차도 사랑스러운 나이니까. 어쨌든 스무살에 <상실의 시대>를 읽었고 (그 에디터는 읽지 못했고) 이 포스팅을 보고있는 어느 스무살은 읽겠지. 그렇게 순환하다보면 <상실의 시대>는 점점 더 스무살다워지는 것이다. 이거 정말 멋지지 않은가!
<어린 왕자>는 내 인생의 순환이다. 초등학교 때 읽은 기억 속엔 '여우.3시.(3시 반인가?)'정도. 스무살에 다시 읽으니 이런 내용이 있었던가싶을 정도로 생경한 구절이 보였다. 조금 더 나이를 먹고 혹시나해서 다시 읽어봤더니 이번에도 생경한 구절의 발견. 그래서 아예 영어,프랑스어 3개국어 지원과 삽화 전격 수록이라는 특별판을 곁에두고 생각이 날 때마다 읽고 있다. 한없이 어릴 땐 만만한 동화책이였는데 어른이 되서 읽으니 한권이 그 자체로 인생이다. 경험만큼 시야가 비례하여 조금 더 보이고 조금 더 보인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도 알고보니 나를 좋아했던 경우는 많다. 사실 그럴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느끼면 나도 좋아하지 않았으니까. 내가 아무리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나를 좋아하지 않는 걸 알았다면 마음이 싹 사라져버리니까. 연애를 하다 이별에 임박해서 내가 확인하고 싶은 건 오직 한가지. '그러니까 이제 날 좋아하지 않는거지?...아니 이런저런 것도 어쨌든 결국 그걸 감당할 수 있을 만큼 날 좋아하지 않아서자나... ok. 그럼 됐어.'
이별은 결국 간단하다. 두 사람의 문제를 뛰어넘을 만큼, 감당할 수 있을 만큼 사랑하지 않아서. (가문끼리 원수인 숙명을 짊어지고 가는 연인이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게 아니고서야)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내게 좋아한다고 말해줄 때의 기분을 또렷하게 기억할 수 있다. 형용할 수 없는 기쁨, 신비롭고 행복하다. 기적같은. 하지만,
「모든 사물을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 것.
모든 사물과 나 사이에 적당한 거리를 둘 것.」
<상실의 시대>를 좋다고 스무살에 읽어놓고 저런 주옥같은 조언을 잘도 잊는다. 생각해보면 대부분 최소한의 적당한 거리를 지키지 못해서 찾아온 이별들이였다. 한 사람은 상대를 과대평가하고 나머지 한 사람은 상대를 과소평가한다. 서로가 동등해지는 시점이 이별인 것이다. 보이는 것의 이면을 알게 되고 더 나아가서는 상대 스스로 추려내 원하는 부분만 보여주고 있다는 것도 인식할 수 있게 된다. 역시 너무 가까워 적당하지 못한 거리가 문제였던 것이다.
「소리내어 울고 싶었다. 하지만 울 수 없었다. 눈물을 흘리기에는 너무나 나이를 먹었고 너무나도 많은 경험을 해왔다. 이 세계에는 눈물조차도 흘릴 수 없는 슬픔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무라카미 하루키 <상실의 시대>
"흠... 글쎄요, 돈버는 일? 밥먹는 일?"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사람이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이란다.
각각의 얼굴만큼 다양한 각양각색의 마음을 순간에도 수만 가지의생각이 떠오르는데..
그 바람 같은 마음을 머물게 한다는 건... 정말 어려운 거란다."
생텍쥐페리 <어린 왕자>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해주는 건 기적이란다.
GQ였던 것 같다 아마도. 어느 에디터가 자신이 스무살에 읽지 못한 것이 최고의 한이라며 소개한 <상실의 시대>를 서둘러 읽었을 당시 난 21살이였다. 만 나이로 스물이니까 괜찮아. 억지 위안을 삼으며. 스무살에 읽은 상실의 시대라니 얼마나 근사할지, 언젠가 시간이 흘러 '그 책은 뭐랄까..스무살답죠. 안그래요?'라고 나른하게 말을 하는 상황도 그려봤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우습기도하고 귀엽기도 하다) 스무살은 그런 허세조차도 사랑스러운 나이니까. 어쨌든 스무살에 <상실의 시대>를 읽었고 (그 에디터는 읽지 못했고) 이 포스팅을 보고있는 어느 스무살은 읽겠지. 그렇게 순환하다보면 <상실의 시대>는 점점 더 스무살다워지는 것이다. 이거 정말 멋지지 않은가!
<어린 왕자>는 내 인생의 순환이다. 초등학교 때 읽은 기억 속엔 '여우.3시.(3시 반인가?)'정도. 스무살에 다시 읽으니 이런 내용이 있었던가싶을 정도로 생경한 구절이 보였다. 조금 더 나이를 먹고 혹시나해서 다시 읽어봤더니 이번에도 생경한 구절의 발견. 그래서 아예 영어,프랑스어 3개국어 지원과 삽화 전격 수록이라는 특별판을 곁에두고 생각이 날 때마다 읽고 있다. 한없이 어릴 땐 만만한 동화책이였는데 어른이 되서 읽으니 한권이 그 자체로 인생이다. 경험만큼 시야가 비례하여 조금 더 보이고 조금 더 보인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도 알고보니 나를 좋아했던 경우는 많다. 사실 그럴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느끼면 나도 좋아하지 않았으니까. 내가 아무리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나를 좋아하지 않는 걸 알았다면 마음이 싹 사라져버리니까. 연애를 하다 이별에 임박해서 내가 확인하고 싶은 건 오직 한가지. '그러니까 이제 날 좋아하지 않는거지?...아니 이런저런 것도 어쨌든 결국 그걸 감당할 수 있을 만큼 날 좋아하지 않아서자나... ok. 그럼 됐어.'
이별은 결국 간단하다. 두 사람의 문제를 뛰어넘을 만큼, 감당할 수 있을 만큼 사랑하지 않아서. (가문끼리 원수인 숙명을 짊어지고 가는 연인이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게 아니고서야)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내게 좋아한다고 말해줄 때의 기분을 또렷하게 기억할 수 있다. 형용할 수 없는 기쁨, 신비롭고 행복하다. 기적같은. 하지만,
「모든 사물을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 것.
모든 사물과 나 사이에 적당한 거리를 둘 것.」
<상실의 시대>를 좋다고 스무살에 읽어놓고 저런 주옥같은 조언을 잘도 잊는다. 생각해보면 대부분 최소한의 적당한 거리를 지키지 못해서 찾아온 이별들이였다. 한 사람은 상대를 과대평가하고 나머지 한 사람은 상대를 과소평가한다. 서로가 동등해지는 시점이 이별인 것이다. 보이는 것의 이면을 알게 되고 더 나아가서는 상대 스스로 추려내 원하는 부분만 보여주고 있다는 것도 인식할 수 있게 된다. 역시 너무 가까워 적당하지 못한 거리가 문제였던 것이다.
「소리내어 울고 싶었다. 하지만 울 수 없었다. 눈물을 흘리기에는 너무나 나이를 먹었고 너무나도 많은 경험을 해왔다. 이 세계에는 눈물조차도 흘릴 수 없는 슬픔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무라카미 하루키 <상실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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